유튜브를 열면 브이로그가 쏟아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자신의 일상을 영상과 소리로 담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올리는, 그런 시대 말이죠. 그에 반해 글로 자신의 일상을 편히 담아 빠르게 공유하는 일은 좀처럼 힘든 것 같습니다. 연희관 015B가 내놓는 한 학기에 한 번, 1년에 두 번 발간되는 긴 호흡의 글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015B 편집위원들이 브이로그를 찍듯이, 블로그에 포스팅 하듯이 글을 써보았습니다. 자신의 가벼운 일상과 설익은 고민들을 조금은 편하게 드러내 보이고 싶었달까요. 과거 한 독자 모임에서 나온 후 잠깐이었지만, 015B 내의 유행어가 되었던 “이 글은 블로그에나 싣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라는 발언과 완전히 대치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빗자루로 바위 치기- 교내 청소노동자와 함께 겨울을 난 기록 알록달록한 백양로의 기억 봄, 가을이 되면 교정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 (저요~) 주접 조금 덧붙이자면, 원체 아름다운 교정이지만, 봄, 가을의 학교는 특히 아름답다. 목련, 벚나무와 더불어 봄에는 파랗게,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백양로의 나무들은 주말에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아마 지난 2학기에 백양로를 따라 걷다 멈춰, 중도 앞 분수대 언저리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자. 기억이 새록새록 나지 않는가? 백양로 나무 곳곳에 걸려 있던 새빨간 현수막, 검게 휘갈긴 글씨를 피해 사진을 찍었던 흐릿한 기억이. 중도 앞, 백양누리 지하 스타벅스 앞, 강의동 복도에서 코비 어쩌고, 청소노동 어쩌고하는 대자보를 보..
핸드폰 화면을 켜면, 이젠 201X가 아니라 2020이라는 새로운 숫자가 우리와 마주한다. 어릴 적 과학 시간에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무엇을 그렸던가? 우주 정거장이라든지, 바다 아래의 세상이라든지, 그런 귀여우리만치 허황한 것들을 야심 차게 그려내며 오른쪽 귀퉁이에 썼던 숫자가 바로‘2020’이었던 것 같은데. 여하튼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맞닥뜨리는 것은 사실 우리뿐만은 아니다. 우리 곁에는 현재의 모습이 완성된 지 벌써 6년 차에 이르는 공간이 있다. 신촌을 기준으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할 거리에 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대부분이 경험해보았을 이곳은 바로 송도 국제캠퍼스(이하 국캠)이다. 바다를 메운 땅, 그리고 그 위에 지어진 ‘국제’캠퍼스..
류석춘의 도전: 2010년대 '위안부' 담론의 지형을 갈무리하며 2019년 9월 19일,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는 그의 강의 시간에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다’, ‘궁금하면 (학생이) 한번 해볼래요?’라고 발언하였다. 수강생들이 해당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학내외로 그의 문제적 발언이 공론화되었다. 사건 직후인 9월 22일, 연세대학교 제16대 사회학과 학생회 는 류석춘 교수를 강력히 규탄하는 입장문을 냈다. 9월 24일에는 제54대 총학생회 에서도 입장문을 내고 류석춘 교수를 비판했으며, 연세대학교 동문으로 이루어진 에서도 류석춘을 규탄하는 입장을 이어서 냈다. 2019년 9월 26일,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이하 대책위)가 구성되어 류석춘 교수에게는 사과할 것을, 학..
“걘 나에 대해 대체 뭘 알고 좋아하는 거야?” 뻔하게 연기하는 사람이, 함부로 가늠하는 사랑이 좀 별로다. 친구들은 연애를 시작할 때면 감탄형보다도 빈번하게 의문형의 문장을 뿌렸다. 분명 아직 그만큼 친밀해지지 않았는데 사귀기 시작하는 순간 ‘애인’이라면 수행해야 할 역할들을 연기하며 설렘을 쥐어 짜내는 사람을 보면 설득력이 없고 의아해졌다. 우리는 그 투명한 대본을 느꼈을 때 우리 안에 곧바로 생겨나는 엄청난 객관화 능력과 놀랍도록 차분해지는 마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이 관계에 집중하고 너의 마음이 진심이라고 믿기 위해서, 잡생각을 하지 않고 설레기 위해서는 무언가 더 섬세한 디테일이 필요했다. 네가 갈구하는 ‘로맨스’라는 고정된 의례의 대본집 속에 내가 그저 대체 가능한 연기자로서 배치된 것이..
“너 걔네 좋아해?” 중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을 지나 지금까지, 나는 오랫동안 ‘빠순이’였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당시의 빅뱅을 시작으로 수많은 ‘오빠들’과 ‘언니들’을 좋아했다. 화면 없는 mp3로 거북이의 와 할아버지의 트로트를 듣던 초등학생은 음악 방송으로 처음 마주한 화려한 비주얼의 댄스 음악에 푹 빠졌다. 그맘때는 작은 유리구슬 같은 마음도 반짝거리는 수백 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나는 열 손가락을 모두 접고도 모자랄 만큼의 아이돌을 사랑했다. 포토샵을 배운 것도, SNS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인터넷의 낯선 사람과 처음 만난 것도 모두 ‘오빠(언니)’라는 교집합 아래에서였다. 하나씩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내 ‘덕질’의 역사는 길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빠질 수 ..
0. “올해 내 신년 목표는 헬스장(혹은 피트니스 클럽) 다니는 거야” 새해가 밝아오면 주변에서 적지 않게 들려오는 말이다. 헬스장 혹은 피트니스 클럽, 그 명칭과 관계없이 온갖 운동 기구가 진열된 상업 시설에 주기적으로 가겠다는 다짐, 그 목표가 “건강한 몸”, “보기 좋은 몸”, “단순 자기만족” 무엇에 있든 간에 바람직해 보인다. 피트니스 클럽은 어느새 우리의 인식 속에서 자기 계발의 장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이곳은 우리에게 우리의 몸을 ‘보기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주겠다고까지 말한다. “살을 빼준다”, “어깨를 넓혀준다”, “근육을 길러준다” 무엇이든 말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는 것은 하나의 소비로 변모한다. 우리가 돈을 써서 원하는 물건을 사듯, 피트니스는..
0. 소설 읽기소설을 읽는다.소설을 왜 읽나.불안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소설을 읽나.내 세계는 얼마나 좁나. 나는 얼마나 무지한가.아무리 애를 써도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면,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소설을 읽는다. 동료와 함께 연어크림치즈 샌드위치와 감자튀김을 먹던 중이었다. 그는 며칠 전 다녀온 제주도 여행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주도를 상상했다. 내가 상상한 제주도와 그가 다녀온 제주도는 같을 수 없고, 그의 여행에 대해 내가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어쩌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애인과 다음 학기 수강 신청에 대해 얘기했다. 어떤 선생의 어느 수업을 들으면 좋을지 대화를 나눴다. 카페에 앉아 딸기 프라푸치노를 마시면서였다. 강의계획서를 들여다보고, 강의 평가를 살피..
0.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합리와 이성을 맹신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마치 모든 문제에 해답이 있는 것처럼 교육받는다. 과거 현재 미래. 원인과 결과. 가해 피해. 온갖 논리적인 언어로 구획된 인생은 명료해 보인다. 논리의 언어들은 삶이 필연적으로 흘러가게 되어있으며, 의지와 선택을 통해 그것을 원하는 모습으로 조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세계의 규칙에 따르면 우리는 논리를 통해 남과 평등하게 대화할 수 있고, 오로지 자신이 한 잘못에 대해서만 정당한 책임을 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그렇지 않다. 이런 언어는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변수들과 그 변수에 휘둘리기도 하는 취약한 인간들이 설 자리를 주지 않는다. 현실에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
:: 2019 홈리스추모제에서 :: 1. 무대 뒤로 커다란 플랑이 서 있었다. 플랑은 가림막이자 동시에 울타리였다. 플랑 상단에 적힌 ‘동료를 위한 동료의 추모’라는 문구가 또렷했다. 넓게 걸린 플랑을 가득 채운 건, 다름 아닌 영정이었다. 어두운 바탕의 플랑 위로 하얀 배경의 영정들이 빼곡했다. 몇몇 영정에는 주인의 사진이 자리했지만, 대부분의 영정은 비어있었다. 출생연 도와 사망이유 등에 대한 글귀가 영정 아래 자그마하게 쓰여 있었다. ‘19XX년도 출생. 사망 원인 : 000.’ 손을 들어 영정의 수를 하나하나 세어본다. 가로 26개, 세로 6개, 약 160여 개의 영정이 겨울바람에 펄럭인다. 160여 개의 글, 160여 개의 삶이 차가운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고 광장에 뿌리내리고 있다. 마치 하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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