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걔네 좋아해?” 중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을 지나 지금까지, 나는 오랫동안 ‘빠순이’였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당시의 빅뱅을 시작으로 수많은 ‘오빠들’과 ‘언니들’을 좋아했다. 화면 없는 mp3로 거북이의 와 할아버지의 트로트를 듣던 초등학생은 음악 방송으로 처음 마주한 화려한 비주얼의 댄스 음악에 푹 빠졌다. 그맘때는 작은 유리구슬 같은 마음도 반짝거리는 수백 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나는 열 손가락을 모두 접고도 모자랄 만큼의 아이돌을 사랑했다. 포토샵을 배운 것도, SNS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인터넷의 낯선 사람과 처음 만난 것도 모두 ‘오빠(언니)’라는 교집합 아래에서였다. 하나씩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내 ‘덕질’의 역사는 길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빠질 수 ..
0. “올해 내 신년 목표는 헬스장(혹은 피트니스 클럽) 다니는 거야” 새해가 밝아오면 주변에서 적지 않게 들려오는 말이다. 헬스장 혹은 피트니스 클럽, 그 명칭과 관계없이 온갖 운동 기구가 진열된 상업 시설에 주기적으로 가겠다는 다짐, 그 목표가 “건강한 몸”, “보기 좋은 몸”, “단순 자기만족” 무엇에 있든 간에 바람직해 보인다. 피트니스 클럽은 어느새 우리의 인식 속에서 자기 계발의 장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이곳은 우리에게 우리의 몸을 ‘보기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주겠다고까지 말한다. “살을 빼준다”, “어깨를 넓혀준다”, “근육을 길러준다” 무엇이든 말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는 것은 하나의 소비로 변모한다. 우리가 돈을 써서 원하는 물건을 사듯, 피트니스는..
0. 소설 읽기소설을 읽는다.소설을 왜 읽나.불안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소설을 읽나.내 세계는 얼마나 좁나. 나는 얼마나 무지한가.아무리 애를 써도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면,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소설을 읽는다. 동료와 함께 연어크림치즈 샌드위치와 감자튀김을 먹던 중이었다. 그는 며칠 전 다녀온 제주도 여행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주도를 상상했다. 내가 상상한 제주도와 그가 다녀온 제주도는 같을 수 없고, 그의 여행에 대해 내가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어쩌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애인과 다음 학기 수강 신청에 대해 얘기했다. 어떤 선생의 어느 수업을 들으면 좋을지 대화를 나눴다. 카페에 앉아 딸기 프라푸치노를 마시면서였다. 강의계획서를 들여다보고, 강의 평가를 살피..
0.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합리와 이성을 맹신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마치 모든 문제에 해답이 있는 것처럼 교육받는다. 과거 현재 미래. 원인과 결과. 가해 피해. 온갖 논리적인 언어로 구획된 인생은 명료해 보인다. 논리의 언어들은 삶이 필연적으로 흘러가게 되어있으며, 의지와 선택을 통해 그것을 원하는 모습으로 조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세계의 규칙에 따르면 우리는 논리를 통해 남과 평등하게 대화할 수 있고, 오로지 자신이 한 잘못에 대해서만 정당한 책임을 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그렇지 않다. 이런 언어는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변수들과 그 변수에 휘둘리기도 하는 취약한 인간들이 설 자리를 주지 않는다. 현실에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
:: 2019 홈리스추모제에서 :: 1. 무대 뒤로 커다란 플랑이 서 있었다. 플랑은 가림막이자 동시에 울타리였다. 플랑 상단에 적힌 ‘동료를 위한 동료의 추모’라는 문구가 또렷했다. 넓게 걸린 플랑을 가득 채운 건, 다름 아닌 영정이었다. 어두운 바탕의 플랑 위로 하얀 배경의 영정들이 빼곡했다. 몇몇 영정에는 주인의 사진이 자리했지만, 대부분의 영정은 비어있었다. 출생연 도와 사망이유 등에 대한 글귀가 영정 아래 자그마하게 쓰여 있었다. ‘19XX년도 출생. 사망 원인 : 000.’ 손을 들어 영정의 수를 하나하나 세어본다. 가로 26개, 세로 6개, 약 160여 개의 영정이 겨울바람에 펄럭인다. 160여 개의 글, 160여 개의 삶이 차가운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고 광장에 뿌리내리고 있다. 마치 하얀 ..
아무도 없는 방,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는 요즘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이, 메이트와 같이 사는 또 다른 이도 어쩌면 자신이 혼자라고 느끼고 있을까요. 당신이 연희관 015B 12호를 집어 들어 이 글을 읽을 그때는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요. 도통 집 밖을 나가지 않다 보니 방문을 나서 계단을 내려가다 문득. 마스크가 걸리지 않은 귀를 발견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밥을 먹으러 오랜만에 들른 학교 앞 길거리에서 ‘아직도 사람이 많구나’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새삼 한해 농사를 망친 꽃가게, 학생들을 기다렸을 식당, 평소보다 유난히 비어있는 공간들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올겨울을 겪었을까요. 마스크를 낀 채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곤혹스러움, 학교로 돌아오지..
연희관 015B 13호를 함께 만들어나갈 새로운 편집위원을 모집합니다!공일오비와 함께하고 싶다면 아래 첨부된 지원서를 작성하여 yonsei015b@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연희관 공일오비는 매 학기 한 권씩 발행하며 12호 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공일오비는 잡지를 지향하는 교지로,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와 소재를 다룹니다. 소재의 사소함이나 파격성과는 상관없이 아직 덜 말해지는 것들, 더 이야기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원 자격 : 학번, 단과대, 전공 무관하며 매주 화요일 저녁 6시 회의에 참여 가능한 사람2학기 이상 활동 가능한 사람 ▶문의 : 편집장 아정 (사진 상의 번호로 문자주세요)
◆인터뷰 활동 방해하며 불법 촬영…삭제 요구에는 인터뷰 영상부터 지우라며 불응◆본교 재학생을 가택에 침입한 도둑에 비유하며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작은 체구의 학생에 가까이 붙어 내려다보고 소리를 지르는 등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학생 위한다고 노동자에게 산타모자 씌우던 용역 업체, 누구를 위한 용역인가 15일 금요일, 두 명의 재학생이 아코디언을 찾아 청소 노동 용역업체 코비 컴퍼니의 사장 박경식(53) 씨에게 불법 촬영을 당하고 폭언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코디언은 그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에 따르면, 박 씨는 청소 노동자 관련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학생들을 불법적으로 촬영했을 뿐만 아니라 인격 침해의 소지가 다분한 발언을 하고 면전에서 내려다보며 큰 소리를..
우리 학교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의례가 있다. 입학식, 졸업식, 연고전... 또 하나, 청소노동자들의 시위도 추가해야겠다. 2011년에는 용역업체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있었다. 2014-2015년에는 고용승계 요구가 담긴 바람개비로 본부 앞 잔디가 뒤덮였다. 2017-2018년에는 정년퇴직자 결원 충원을 요구하며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두 달 가까이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구체적인 쟁점은 달랐으나 불합리한 노동조건과 비인간적 처우에 대한 문제제기, 더 근본적으로는 노동자의 유연성을 강제하는 ‘비정규직’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사회현상을 다루는 많은 교수들이 ‘문제’로 연구하고 강의해 온 주제다. 직제개편 과정에서 교직원들도 심각하게 직면해야 했던 주제다. 명문사립대..
0. ‘재활용 폐기물 보관실’과 휴게실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들이닥치는 매캐하고 독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코를 부여잡고 말았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둘러본 두세 평 남짓 되는 공간은 각종 청소용품과 화학약품들이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었다. 창문은커녕 환풍기도 없는 공간을 빼곡히 채운 물품 옆으로, 줄 맞춰 놓인 몇 개의 의자와 커피가 놓인 책상이 위태롭게 자리했다. 지어진 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식 건물인 제4공학관 지하에는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이 있다. ‘재활용 폐기물 보관실’이라는 명패를 버젓이 붙이고. 아코디언이 만난 3명의 노동자는 매일 아침 5시 30분 그곳으로 출근해 옷을 갈아입고 1사람당 약 1.5개 층의 건물을 청소한다. 지난 10월 2일부터 빨간 조끼를 입고 학관 앞에서 선전전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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