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영상이 있다. “나오라고 씨발년아.” 사람을 밀쳐 바닥에 쓰러뜨린다. 막으려는 사람들을 밀고 짓누른다. 그렇게 넘어진 사람들을 발로 밟는다. 깨진 유리가 바닥에 나뒹군다. 머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비명소리가 가득하다. “야 사람 죽는다. 사람 죽어.”, “그만 때리란 말이야.”, “경찰, 경찰”. 도움을 호소하지만 경찰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영화 속 이야기일까? 아니, 7월 12일 노량진수산시장 신시장 이전을 거부하는 구시장 상인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을 담은 영상이다. 노량진역 7번 출구로 나오면 깨끗하고 세련된 시장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온갖 계고장이 덕지덕지 붙은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이하 구시장)이 있다. “출입 시 형사 고소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위협은 구시장을 외부와 분..
0. 나는 통학러였다. 밤낮으로 신촌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연희관까지 오고 가는 일상이 몇 개월간 이어졌다. 신촌역에서 연대 앞 횡단보도까지 매일 걷던 나는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별 시선이 가지 않았다. 이미 인간들끼리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매너, 어차피 다들 피곤한 상태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뭐하러 눈을 맞추겠는가. 나는 오히려 항상 그곳에서 기다리는 비둘기를 바라보았다. 바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옆에서 종종 냉대의 시선을 받는, 검게 찌들어 버린 도시 비둘기. 조금이지만 비둘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생긴 걸까? 비둘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비교적 한결같다. 비둘기 날갯짓 한 번에 셀 수 없는 세균이 떨어진다는 낭설이 돈다.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없는 검은색 물질에 물들어버린 비둘기들을 좋아해 ..
0. 회색 도시 어느 날 회색 양복을 빼입은 신사들이 도시에 등장한다. 매일 숫자가 불어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들의 노골적인 침투를 알아채지 못한다. 회색 신사들은 “시간 절약. 나날이 윤택해지는 삶!”과 같은 포스터들을 사방에 붙이고, 도시 사람들을 하나둘 꼬드겨 시간 절약 거래를 체결하더니, 이윽고 도시를 장악해버린다. “대도시의 모습도 차츰 변해갔다. 옛 구역은 철거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모두 생략하고 꼭 필요한 부분만 살린 새로운 집들이 지어졌다. 그 안에 살 사람들에 맞추어 집을 짓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면 제각기 다른 모양의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모양의 집을 지으면 돈이 훨씬 적게 드는 데다 무엇보다 시간을 절약하는 이점이 있었다. (...) 다른 점이..
서울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간다. 바쁠 수밖에 없다. 서울은 긴 시간 동안 한반도 내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굳히며 형성된 한국의 심장과 같은 공간이다. 그리 넓지 않은 땅을 가진 서울에는 약 1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우리나라 총인구의 약 20%에 달하는 숫자다. 그리고 동시에 약 1500여 개의 공공청사 및 복지시설이 존재한다. 국회의원들은 저 멀리 바닷가의 공기 좋은 마을이 아닌 ‘서울’에 모여 열띤 토론을 나눈다. 대통령의 집무실과 거주공간 또한 당연하게도 서울에 있다. 만일 영화나 소설 속에 흔히 등장하는 재난 사태가 서울까지 퍼지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기능은 마비될 테다. 이런 특수한 상황조차도 서울이 배경이라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한국의 심장이 과연..
누군가에게 전하거나 타인을 설득하고픈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 「연희관 015B」에 모입니다. 그렇게 모인 편집위원들은 자신의 글이 어떤 독자에게 닿아,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지 바라며 혹은 의도하며 글을 씁니다. 말하지 않곤 답답해 견디지 못하겠어, 지금 학내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서, 글이라는 무기가 절실하게 필요해서라는 이유로 각각의 글이 쓰이기 시작합니다. 좋은 글이 무수히 쏟아지는 지금, 왜 「연희관 015B」가 글을 써야 하는지 매번 서로에게 물으며 말이죠. 이번 호는 ‘도시의 존재 존재의 도시’라는 커버스토리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글들을 빽빽하게 채워 넣었습니다. 두별은 도시와 결부되었던 편집위원들의 경험을 재료로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에 물음을 던집니다. 노랑은 여러 도시에서 마주한 각각의 ..
연희관 015B 12호를 함께 만들어나갈 새로운 편집위원을 모집합니다! 공일오비와 함께하고 싶다면 아래 첨부된 지원서를 작성하여 yonsei015b@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연희관 공일오비는 매 학기 한 권씩 발행하며 11호 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공일오비는 잡지를 지향하는 교지로,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와 소재를 다룹니다. 소재의 사소함이나 파격성과는 상관없이 아직 덜 말해지는 것들, 더 이야기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원 자격 : 학번, 단과대, 전공 무관하며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회의에 참여 가능한 사람 2학기 이상 활동 가능한 사람 ▶1차 모집기간 : ~9월 14일 토요일 밤 12시까지 Q. 모집 기간이 1차, 2차로 나누어져 있는 이유는 무..
0피곤하다. 힘들다. 집에 가고 싶다. 자고 싶다. 아주 익숙하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문장이지 않은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 대부분은 이 문장들을 하루에도 여러 번 자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그러니 나보다 더 바쁘고 학교도 다녀야 하는 당신들은 당연히 더 그럴 것이다. 당신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즈음이 되어서야 이런 말들을 뱉는다면 그나마 낫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오자마자 머리의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에 자신의 피곤함과 침대에 대한 사랑을 피력하는 당신들도 많을 테니 말이다. 학교에 다니면 다닐수록, 지치고 힘들고 피곤해진다. 거기에 더해 건강 챙겨야 하는데, 운동해야 하는데, 비타민(때로는 홍삼, 영양제) 먹어야 하는데 같은 말들도 점점 더 자..
2018년 10월, 강서구 PC방 사건의 피의자 김성수의 우울증 진단서가 제출됐다. 이 사실이 보도된 후 의 제목으로 올라온 국민청원에 동의한 인원은 현재 1,192,049만 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가뿐히 경신했다. 청와대 청원 답변 기준 인원인 20만 명을 충족한 후에도 보란 듯이 그 5배에 달하는 인원이 더 찾아가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무고한 이의 이유 없는 죽음으로 인해 물꼬가 터진 논의는 담당의 남궁인이 피해자의 상해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SNS 게시물로 인해 폭발했다. 뜨거운 지지를 얻은 청원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합니까. ⋯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면 안 될까요? 세상이 무서워도 너무 무섭습니다." 당시 김성수의 심..
저기, 무지개 굿즈라도 들고 올까요? 어느 아침, 꿀잠을 자고 있던 당신을 누군가가 세차게 흔들어 깨운다. 그 사람은 당신이 지금 엄청난 위기에 처해있어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당신은 집 밖으로 이끌려 나간다. 당신은 난민이 되었다. 출국 직전에 들은 바로는, 당신은 이제 어디로든 도착해 난민신청을 받아야 한다. 당연하지만 애석하게도 당신은 당신이 난민으로 인정받을만한 어떠한 증거자료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당신을 도운 사람들은 난민 신분에 대해 짧게 설명해주었다. 국적, 종교, 정치, 인종, 그리고 특정 집단을 이유로 본국에서 박해를 받아 더는 그곳에 있을 수 없게 된 이들이 난민이다. 당신은 ‘특정 집단’이기 때문에 살던 곳에서 내몰렸다. “당신이 동성 파트너와 키스를 하..
제목은 현실문화에서 2015년에 나온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에서 따 왔다.[”남자가 어쩌다가...“]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람들에게 ‘남페미’ ‘버팔로’ ‘보빨러’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사람 중 하나다. 우선 그 배경부터 설명을 간략하게 해야겠다. 나는 15년에 메갈리아가 생기고 그 이후 일련의 사건들이 생기고 나서도 생각에 별 변화가 없던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에도 완전히 남자들만의 세상에서 살았고, 중고등학교는 모두 남학교여서 또래의 여성과 대화를 제대로 나눠 본 적도 손에 꼽는다. 비슷한 환경에 있던 남성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나 또한 성차별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이는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여성에게만 건네어지는 종류의 말들에 대한 인식이라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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