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당신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해 ‘나는 곧 내 몸’이라는 답을 던지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몸은 특별하다. 그리고 특별한 만큼 당연하다. 나라는 존재는 평생 단 한 번도 몸과 분리되지 못하고, 그 몸이 아닌 다른 몸으로 살 수도 없다. 따위의 매우 흥미로워 보이는 부제에 끌려 이 글을 펼친 독자들이라면 당황스러운 도입부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누가 보더라도 타투에 대해 이야기할 것처럼 보였던 글의 시작이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곧 내 몸’이라니.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다행스럽게도 이 글은 분명 타투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몸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전통적이고 중요한 질문이지만, 이 글..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사람 2018년 1월. 최저임금이 6,470원에서 7,530원으로 상승했다. 나는 시급이 오른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2월. 서울의 모 아파트에서는 최저임금이 오르자 경영상의 이유로 근무하던 경비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해고 통지서를 보내 이슈가 되었다.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고, 일부 네티즌들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비인간적이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나 역시 뉴스를 보며,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해고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은 얼마나 매몰차고 이기적인 것이냐며 비난했다. 정작 우리 아파트 경비원의 상황은 모른 채였다. 2018년 여름. 사상 최악의 폭염이 지속되었다. 에어컨을 자주 틀진 않던 우리 집도, 기록적인 더위에 못 이겨 에어컨을 거의 매일 틀며 지냈다. ..
이성애만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회에 퀴어커플이 내는 균열들 이상한 나라의 호모연애 몇 년 전, A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하나 이상의 성별에 성적, 감정적 끌림을 느껴요. A는 많은 것을 물었다. 그냥 남자만 좋아하면 안 되겠니. 동성애인과 동성친구를 어떻게 구분하니. 그 당시에 나는 이 모든 질문에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답하기 위해 애썼다. 이것을 증명해내고 그래서 A를 설득해야만 내 존재가 인정받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혼란스러웠다. 선뜻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을 당장 뱉어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나를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 확신 없는 것들에 대해 마치 그것이 정답인 체했다. 그리고 올해, 남자친구가 생겼냐고 묻는 A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여자사람친구 말고 ‘여자친구’요..
“포르노를 자주 보시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의 성별에 따라 답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고 자주 본다고 답했다면, 당신은 당신이 보는 포르노에 만족하는가? 만약 자주 보지 않거나 아예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방영한 시트콤 에서 이순재가 대놓고 ‘야동’을 보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야동순재’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야동은 더는 숨겨야 할 것조차 아니게 되었다. ‘포르노’라는 말보다 ‘야동’이라는 말은 어쩐지 친근한 느낌마저 들게 하여 이제는 농담처럼 거론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야동에 관해 이야기하기 쉬워졌다 한들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남자가 야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심지어 ‘정상적’인 것으로까지 여겨지지만, ..
쑤쑤, 세진의 더블유킥스(W-KICKS), 연세 여자 라크로스 인터뷰 당신의 스포츠 취향을 알기 위한 3가지 질문1. 나의 운동신경은 발놀림보다는 손기술에 발달되어 있다. [O/X] 2. 스포츠는 [장비를 가지고/맨 몸으로] 뛰어야 더 재미있다.3. 몸싸움을 하면서 득점하는 것이 [즐겁다. / 부담스럽다.]질문에 답을 다 했나요? 당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스포츠 종목은 글 끝에 있어요!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인터넷상에서 먼저 유행하여 실제로도 꽤 자주 쓰이는 단어로 ‘취존’이 있다. 타인의 취향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지 말고 존중하라는 심오한(!) 교훈을 쉽고 단호하게 전달하는 강력한 말이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기 마련이고, 주변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을 실천하는 개인들이 조..
얼마 전 영화 이 개봉했다. 영화가 거둔 상업적 성공과는 별개로, 영화가 6월 민주항쟁을 재현한 방식에 대해 여러 비판이 제기되었다. 우선 독재에 맞서 투쟁하는 캐릭터 대부분이 남성이다.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는 ‘연희’ 역시 운동에는 관심 없는 새내기로 나오는 탓에, 영화를 보며 당시에 거리에서 함께 싸웠던 여성들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또 기자와 검찰, 중앙정보부 등 몇몇 조직 내부의 시선으로 6월 항쟁을 다루는 탓에 노동자와 빈민 등 많은 역사의 주역들이 스크린에 등장하지 못했다. 거기에 2018년을 살아가는 ‘학생’으로서 나도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80년대를 그린 영화에는 독재에 맞서 싸우는 학생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그 당시 학생들은 무엇 때문에 그..
2017년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가 충격적인 사건들과 함께 ‘펑’ 난 데 이어, 2018년 3월 보궐선거는 ‘후보 등록 0’으로 모두의 무관심 속에 연기처럼 잊혀졌다. 보궐 선거조차 후보가 0명이라니! 이것은 이제 ‘총학생회’의 가치가 연세대 2만 학우 중 누구에게도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하다못해 총학을 스펙으로 정계에 스카우트될 찬스, 또는 각종 스폰과 협찬으로 어둠의 돈을 끌어모을 포부 등, 누구 한 명쯤은 충분히 고려해 볼 법한 ‘언피씨’한 노림수조차 가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말로만 듣던 “학생회의 위기”가, 드디어 코앞에 닥쳐왔다! 상당히 과장해서 한번 써봤다. 사실 소위 ‘학생회의 위기’는 최근 갑작스레 닥쳐온 것이 아니다. 과 학생회의 존..
2015년 5월 13일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최 모 씨가 훈련 도중 예비군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후 자살했다. “GOP때 다 죽여버릴 만큼 더 죽이고 자살할 껄”이라는 유서를 남긴 채였다. 김종대 의원실에 의하면 “한 해 9,500여 명의 병사가 복무부적응과 사건사고로 전역”한다. 또한 “‘군 피해자’는 그 가족을 포함하여 30,000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은 무사히 전역했지만, 괴롭힘의 도구였던 매미를 피해서 이사를 해야 했던 가족이 있다. 아들의 죽음을 떠올리다가 교통사고만 9번이 난 가족이 있다. 아들이 좋아했던 음식만 보면 눈물이 끊이지 않는 가족이 있다. 손자가 죽은 지 3년이 되었지만 가끔 손자가 언제 전역하느냐고 묻는 가족이 있다. 이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여태껏 전무하..
그동안 ‘학생회’라는 말에서 총여학생회보다는 총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과 학생회를 먼저 떠올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학생회’를 주제로 공일오비 8호를 준비하면서, 다른 학생회들보다도 총여학생회에 더 주목하게 되었다. 작년 선거 때 의 ‘학내 페미니스트 네트워킹’이라는 공약을 눈여겨보았던 게 계기였다. 기획 논의를 하면서 이 공약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학생회들이 겪는 문제를 풀 실마리가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우리에겐 학생회가 학생들의 참여를 호소하는 풍경이 익숙하다. 이와 연결된 문제로, 학생회와 학생회 밖의 학생들이 만나는 자리 역시 부족하다. 학내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의제는 학생들의 일상적..
결국, 올해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단은 공석이다. 그동안 ‘학생사회의 위기’라는 표현이 쓰이는 상황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2년째 비대위를 맞는 지금보다 그 말이 적절한 때가 있을까 싶다. 굳이 거창한 말을 쓰지 않아도, 같은 일이 2년째 반복되는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총학생회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젠 솔직해질 때가 됐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학생회가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시간을 돌려 작년으로 돌아가 보자. 총학생회가 없는 1년 동안 총학생회의 빈자리가 느껴진 적이 있었나? ‘비상’ 대책위원회라는 이름과는 달리, 우리의 학교생활에는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론 아무도 총학생회를 찾지 않았다. 불과 일 년 사이에, 연세대학교에 총학생회라는 기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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